상해외탄(上海外滩)
Nikon D1/Sigma 18-50mm
상해의 상흔(伤痕)
상해 포서(浦西)에는 외탄지구가 자리잡고 있는데,
1.5km의 외탄지구는 160여년전 불평등하게 맺은 난징조약으로 자리 잡은 외세,
즉 영국(후먼조약), 프랑스(왕샤조약)가 '아편전쟁' 이후 조차지로
상해에 거점을 두면서 만들어진 상업지역이다.
이것이 황포강을 중심으로 포서(浦西)의 100년된 도시와 포동(浦东)의
최신식 10년된 도시가 공존하게 된 원인이다.
외탄(外滩)은 조계시절 당시의 건축물들이 늘어서 있는데, 저녁시간 대에
경관조명으로 이국적인 풍경이 연출된다.
상해의 근현대 160여년의 역사는 치욕스런 조약으로 시작되었다.
영국과의 아편전쟁(鴉片戰爭)의 결과인 난징조약은
중국 근대사에 있어 최초의 불평등조약이었는데, 다음과 같은 내용이 포함된다.
영국인 거주를 허가하고, 영사(領事)를 설치한다.
행상(行商) 즉, 공행(公行)과 같은 독점상인을 폐지한다.
수출입 상품에 대한 관세율은 양국이 협의하여 결정한다.
영국인 상인이 내륙을 어디에나 진출할 수 있다.
영국인이 죄를 범하면, 영국 관헌이 체포하고, 중국에 알리고,
영국의 관헌이 조사하는 영사재판권을 인정한다.
만약 청나라가 다른 나라와 새로운 조약을 체결할 경우,
영국보다 조건이 유리하면, 영국에도 그 조건을 인정한다.
즉, 청조는 영국에 대해 최혜국대우를 우선 인정한다.
*식민지정책을 관철하기 위한 전략 전술 패턴은
일본과 조선간에도 적용되게 이른다(강화도조약).
아편전쟁의 패배로 중국은 홍콩의 할양, 상해와 광동 이외에 다섯항구를 개방해야 했다.
상해시 외탄지구의 공공시설에는 "개와 중국인 출입금지"라는 문구가 적혀있었다고.
아이러니하게도 그러한 상흔이 관광지가 된 셈이다.
상해를 여행하고자 하는 여행자가 숙박을 잡을 때도
기준으로 삼는 지역은 바로 외탄이다.
바다위의 뭍 상해(上海)라는 지명처럼 워낙 지대가 낮아
제방을 쌓았는데 그 축선이 현재 외탄관광의 주요 동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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