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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京旅行记

 

북경어 이야기

 

동음이자(同音異字)와 동자이음(同字異音) 한자(漢字) 

한자가 표의문자지만, 우선적으로 읽는 음도 고려하였으므로 일자일음이 원칙이지만

해당 지역의 음운상의 특징을 배려할 수는 없었다.

 

(금) 쇠  (김) 성

[jin] [gam]은 각각 북방/광운이나 중간지방에 [gim]에 가깝게 발음하기도 한다.

원래 [sh]는 후에 [ch]에 가깝게 발음되었는데, 몽/만족이 지배하면서

부터일 것으로 생각된다.

 

內 (내) 안  (나) 여관

[nei] [na]는 북방어음이지만 [들일 납 nap]은 광운으로 생각된다.

 

北 (북) 북녘 (배) 달아날

[bei]은 북방어음이고 [book]은 광운[bok/bak]에서 기원한다.

실제로 산서나 사천지방은 압운이 탈락된 [bo]에 가깝게 발음한다.


 食 (식) 먹다 (사) 밥

[shi] [si] / [sik] 는 각각 북방/광운으로 보인다.

[sek]은 백화음으로써 훈음이다. 민음은 [jia]이다.

[yi]는 사람이름에만 쓰인다(일어에도 종종 보인다).


  (차) 수레 (거) 수레

 [che] [ju]는 북방어음이다. 당음은 [chia] [gu]에 가깝다.

광음은 [tea]로 茶의 음운과 동일하다.


(행) 다닐 (항) 항렬
 보통화는 [xing]으로 주로 쓰이나 특별한 경우 당음[hang]도 사용한다(銀行).

광운 역시 [hang]이다. *민음은 [gia]


(활) 살 (괄) 물소리
보통어음 [huo/kuo]으로 h/k음은 매우 밀접한 음운대응을 이룬다.

 

(동) 마을 (통) 통할
 [dong][tong]은 아주 밀접한 음운대응을 이룬다.

 

(합) 합할 (홉) 흡
 [hap]은 광운이다. *복주음은 별도로 조사

 

(반) 돌이킬 (번) 뒤칠
 

(악) 악할 (오) 미워할
 보통화 [e]가 관중지방에는 옛이응의 비음이 섞이면서 [nga]에 가까워진다.

광운이 [ok] 이나 [ngak]발음이 있었을 법하다.

'오'는 북방어음에서 유입된 것이다.


(견) 볼 (현) 드러날
북방어음 [jian], 광음 [gin]에서 크게 음운대응상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xian]은 원래 복주음 [hien]에서 나온 음이다.  


(살) 죽일 (쇄) 감할
 북방어음 [sha] [shai]는 각각 당음에 기원한다.

 

 (식) 알 (지) 기록할
 [sik]은 광음/민음/당음 동일하다.

 

(씨) 성 (지) 나라이름
북방어음 [shi]은 대체로 [xi]는 광음이다.


降  (강) 내릴 (항) 항복할
각각 병음 [jiang] [xiang]에 대응하지만

청음/복주음(명음)에 해당한다.

 

(도) 법도  (탁) 헤아릴
 병음으로 [du] [duo]이나 복모음(ex. uo)보다 단모음(ex. u)이

탁음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便  (편) 편안할 (변) 오줌
 병음으로 [pian] [bian]과 일치한다.

 

宿  (숙) 잘 (수) 별

병음 [su][xiu]는 각각 광음/북방어음에 대응한다. 

[sook]은 광음이고 [soo]는 북방어음이다.
 

射  (사) 쏠 (야) 벼슬이름
병음은 [she] [ye]이다. 광음은 [je]이다.

 

說  (설) 말씀  (세) 달랠

[shuo]의 광음은 [suit]이고 북방어음중 방언음으로 [shui]으로도 발음된다.

[shui]이 한국의 신라음으로 들어와 [세]가 된 것 같다.  


參  (참) 참여할  (삼) 석
광음 [cham]과 북방어음 [can]은 음운대응상 동일하다.

  
宅/宅  (택) 집  (댁) 댁

병음으로 [zhai]지만 문어음으로는 [zhe]이다.

아마도 단모음인 [zhe]가 택/댁에 가까울 것이다.

 광음은 [chak]이고 복주음은 [ch]가 [t]에 병합되는 것을

고려할 때 [taek]에 가까워질 것이다.
 
復  (복) 회복할  (부) 다시

북방어음 [fu]의 경우, 중국지방방언의 음운특징상 [b] [f] [p]

혼용되는 경우가 매우 잦다. 한국음 [bok]은 민음에 기인한다.
 

則  (칙) 법  (즉) 곧

강한 발음은 [h]을 첨가하여 [jhat]으로 표시한다.

 

음차/가차

  *삼국사기는 683년 식해를 폐백용품으로 준비했다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당시 동해안의 향토음식이었던 식해가 일본에 전해지게 되었다(일본의 사학자들은 반도의

도래인이 전해준 것으로 본다).  <식의 문화> 의 저자 이시게나오미츠(石毛直道)는 718년 나레즈시(なれずし)에 관한 최초 기록이 있고 그 기원은
동해연안의 향토요리에서 전래되었다고 밝혔다.

*당연히 壽司는 음차이다.

 

북경 이야기

 

마오의 대장정

 

대장정(長征, Long March)은 국민당에 패퇴한 홍군이 18개의 산맥과 24개의 강을

건너 이동하면서 오히려 세력을 넓히게 된 사건이다.

패퇴한 것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된 것이다. 

1930~1934년 당시 마오의 홍군은 강서소비에트를 5차례에 걸쳐 내전하였는데,

5차작전시 마오의 홍군이 궤멸직전에 있었고 1934년 10월 15일

10만명의 전투원 등 병력이 극적으로 살아남아 이동하였다.

 

*1935년 10월 마오의 부대가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불과 8,000명 정도만 생존해 있었다.

장정 도중 농민들을 조직하기 위해 각 지방에 남겨진 사람들도 일부 있었지만, 대부분은 전투·질병·굶주림 등으로 죽어갔다. 사망자들 중에는 마오쩌둥의 어린 두 아이와 그의 동생 마오쩌탄[毛澤覃]도 포함되어 있었다.

 

*강서소비에트는 중화소비에트공화국(中華蘇維埃共和國, 中华苏维埃共和国)를 말하는 것으로 1931~1934년 모택동과 주덕에 의해 세워졌다. 1921년 당시 지식인과 노동자를 기반으로 중국공산당이 만들어졌는데, 국민당과 제휴하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제1차 국공합작이다.

공산당원들은 개인자격으로 국민당에 입당하였다.

 

*중화소비에트공화국(中華蘇維埃共和國)는 꽤 나름대로 진보적인 헌법체계를 갖춘 국가(?)라 할 수 있다. 물론 마오에 의해 부정되었다(헌법파기).

 

 

 

 

 

어떤 중국인은 이렇게 말한다.

"왜 소수민족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모두 나가버렸으면 좋겠다. 소수민족 때문에 중국을 보는 시선이

안좋다. 사라졌으면 좋겠다."

아직은 어려서 그렇게 말한걸까? 그 심정이 그만의 것일까?

 

 

 

 

 

모주석기념관(毛主席紀念堂) 입장료 무료(카메라/가방은 맡겨야 함)

방부처리 되어 보존된 모택동의 사체를 관람할 수 있게 되다고 한다.

개방시간 : 오전 8시 30분 - 11시 30분

화요일, 목요일 : 오후 1시 30분 - 4시

성수기 7월·8월 오전 입관(월요일 휴관)

 

 

지정된 시간에는 개방되어 있어야 겠지만, 불규칙하다.

여행시는 늘 개방시간을 체크하여야 낭패를 줄일 수 있다.

 

 

이른 바...만일 사람이라면 중국의 침묵하는 증인중 하나 일 것이다.

 

 

저렇게 어렵게 민중(농민)이 중심인 국가를 세워놓고(실제는 공산당 일당 독재)

대놓고 민중/인민을 학살했으니 마오나 덩이나 업적을 앞세워

과오(過誤)를 덮자는 것은 마치 우리를 보는 듯 하다.  

 

 

 

인민대회당(人民大会堂)

참고 : http://ko.wikipedia.org/wiki/%EC%9D%B8%EB%AF%BC%EB%8C%80%ED%9A%8C%EB%8B%B9

 

 

 

 

 

건국60주년 행사준비로 분주했다.

1949년 10월 중화인민공화국의 건국을 선언하였다.

중화민국의 경우 1949년 12월 국민당정부가 정부를

대만으로 이전한 이후 남/북한과 마찬가지로 본격적인 체제경쟁이 시작되었다.

(번/간체 문제와 남/북한간의 한자 혼용문제가 닮아 있다)

 

 

 

거대한 스크린을 만리장성처럼 늘어뜨려

급격하게 서구화된 모양새를 중국의 중요한 아이콘으로 삼으려 한다.

 

 

내가 도착한 날과는 달리 통제가 많이 완화되어 있었다. 

 

 

국기하강식 

 

 

촬영하기 위하여 군중이 몰려들었다. 정말 적지 않은 인원이었다.

 

 

 

 

 

 

폼새만 보자면 대만 손문기념관의 그것이 더 멋져보인다.

 

 

또 하나의 증인이 있다.

고궁앞의 천안문과 마오이다.

 

 

그는 안다. 얼마나 잔인하고 추악했는지...

실은 천안문 사건이 있었는지조차도 잊혀져 가고 있다.

 

 

 

아직까지도 후야오방과 자오즈양에 관해

공공연하게 이야기되는 것을 꺼리는 북경인들...

 

 

 

 

 

 

모양새로만 보면, 중국의 국부 아니 한족의 국부 손문보다

모택동은 한족의 아버지로 여겨진다. 손문(孫文)이 국민당의 창시자라는 이유로

그는 대만의 국부(國父)이지 중국에서는 '혁명선행자'(革命先行者)로서 존경받는다.

 

 

 

 

중국인의 정신세계와 문화유산을 갈기갈기 훼손하였다.

중앙의 중앙을 차지하고 있다니 씁쓸하였다.

 

 

 

 

이곳 주변을 지키는 경비(?)에 해당하는 군인은

대체로 몸매가 호리호리하였다.

 

 

 

중산공원입구 / 이곳을 통해 고궁으로 진입한다.

 

 

 

짐을 꾸려 북경서역으로 이동!

 

 

정말 어마어마한 규모이다. 호텔이 얹혀있으니 당연하겠지만 말이다.

 

 

 

서역광장에는 라싸/성도/중경/서안/태원/장가계/개봉/낙양 등지로

상업에 종사하는 이들로 꽉 차있다.

 

 

 

신종플루로 인해 짐을 검색한다.

 

 

대기중

 

 

좌우편에 열차 개찰구가 있다.

 

 

라싸행 21:30 차 탑승

 

 

탑승완료

 

 

YZ350928 / 객실 시설은 만족할 만한 수준 

 

 

티벳글자가 적혀있다.

중국 서장에 관한 잡지가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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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푸우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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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京旅行记

 

북경어 이야기

 

냉전기 40년 이후 한중 수교 이후 변화된 것이 또 하나 있다. 중국의 중요 인사의 방문이 이어지면 틀림없이 방송되곤 했는데, 보통화라고 하는 그들의 언어가 듣기에 너무나 생소했던 것이다.

우리에게 있어 중국어는 홍콩말의 받침들어간 그것이다. 보통화는 그대로 받아들이기에 우리의 한자음과 차이가 컸기에 매우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홍콩영화 붐 이후 대만영화들도 극장에 걸리면서 차차 익숙해져 온 것이다. 현재는 케이블TV(Qing/CCTV)나 위성방송에서도 누구나

쉽게 중국방송을 시청할 수 있다.

 

어휘

 

언어, 특히 문자(글말)는 기본적으로 표시/기록을 하고자 하는 욕구(초기에는 묘사였겠지만)가 구체적으로 실현되면서 발생한 것이다. 보다 정교한 과정(글자를 조합하여 새로운 글자를 만들어내는 단계)을 거치면서 표음화되었겠지만, 그것은 기본적인 어휘가 널리 통용되고 인정되는 언어공동체 이후일 것이다.

 

어휘가 만들어지고 확장되어가는 과정은 지배계층에 의한 것도 있겠고, 피지배계층에 의한 것도 있을 것인데 대체로 전쟁이나 민족간에 융합(?)을 통해 어휘가 대폭적으로 수용 확장되는 현상도 잦았던 것이 바로 우리 인류역사이다.

 

표의화

 

초기의 표의문자는 관념적이고 추상적이면서 메시지를 전하는데 목적이 있었던 지라

발음을 어떻게 읽어낼 것인가 따위의 문제는 차선이다. 

철자의 고정화는 한참 이후이다.

영어철자는 표음문자이겠지만 활용하는 과정도 그렇다고 할 수 있겠나? 곰곰히 생각해보라.

 

*언어학자 쇼쉬르는 이것을 표음문자의 표의화라고 한다.

 

영어의 경우, 프랑스/라틴/앵글로/독어 계통의 어휘가 복잡하게 뒤얽혀 만들어낸 탓에 

발음과 철자법의 불일치를 가져온 것인데, 우리글과 일본의 가나는 그에 비하면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간단하고 쉬운 문자인 것이다. 문제는 입말이 아닌 글말이므로 글말의 본질과 그 목적(예컨데, 표의)에 관해서는 어떤 문자이든 쉽고 어렵고 하는 것은 서로 비슷한 상황이다.

 

표음화

 

인류초기의 언어는 음성만이 있었으나 표기를 위해서 표의문자를 개발하였고,

표의는 일정한 절차와 과정을 거쳐 표음의 요구에 따라 진화되었다. 그것이 현재의 표음화이다.

표음은 기본적으로 표의의 바탕위에 보조하는 것이지 역할은 다른 것이다.

마치 머리와 입과 같다. 처리장치와 출력장치인 셈.

 

중국인이 가장 즐겨먹는 돼지를 살펴보자. 돼지의 대부분은 사천지방에서 사육된다.

돼지를 가리키는 한자표기는 猪(저), 豕(시), 豚(돈), 亥(해), 猳(가), 獜(린), 豵(종) 등 다양하다.

이중 猳 獜 豵은 현재 사용되지 않는다. 亥는 결합명사로만 쓰인다(해시亥时 신해辛亥).

 

亥 [hài] 해(상상속의 돼지)

豕 [shǐ] 시 

豚 [tún] 돈

猪 [zhū] 저

 

공통점은 豕을 제외한 나머지는 형성자란 점이다. 표음화된 직후 만들어진 글자라는 말이다.

豕는 돼지의 상형자(象形字)이다. 훗날 돼지고기를 먹는 민족이 합류하면서 음성어휘가 유입되었다.

그들(필자 추정으로는 월족계통)은 일상적으로 돼지를 먹었으므로 돼지는 곧 돼지고기였던 것이다.

그들의 언어로는 [tún]이었을 것이고 이것을 표시할 마땅한 글자를 豚이라는 형성자로 만들어낸 것이다.

豚는 돼지고기를 의미하지만, 猪 (멧돼지, 짐승변 犭)가 사육되면서 야생 개념보다는 돼지, 고기의 의미로 정착되었다.

현재 중국어에는 북방어 음운의 猪 만이 사용되고 있다(일본어는 멧돼지로 이해하고 한국은 豚에 익숙하다).

인류사에 있어서 돼지는 매우 가까운 동물이다. 오죽하면 집(家,  宀(宝盖头) + 豕)이라는 글자에 돼지가 있겠는가.

쉽게 설명하자면 똥돼지를 떠올리면 된다.

 

집을 의미하는 어휘를 예로 하자면,

 

房 [fáng] 방

屋 [wū] 옥

宅 [zhái/zhè] 택 

家 [jiā] 가

 

房 [fáng] 이 어휘가 사용될 당시는 집은 곧 방이었다. 어미접사 子가 붙으면서 '집'으로 쓰인다.
屋 [wū] 지붕이 있는 집을 의미. 오/월국에서 사용되는 글자이다. 현재도 房屋 등으로 쓰인다.
宅 [zhái/zhè] 사는 곳이라는 의미가 강하다. 그래서 주택(住宅), 택지(宅地)로도 결합되어 쓰인다.

집의 높임말 '댁'은 '택宅'이 한국에서 경어로 정착된 경우이다.
家 [jiā] 위에서 설명한 대로 돼지와 함께 살던 당시의 가옥형태로 만들어졌으나 현재는 단독으로 널리 쓰인다.

 

어휘가 시대성을 같이 한다는 것이 이해되는가?

한어의 기본어휘가 단음절이었음을 상기하면 언제 어떤 배경에서 만들어진 글자인지 알 수 있다.

 

 

문자언어(글말)와 음성언어(입말)간의 일치

 

*진시황의 분서갱유 당시에도 학자들이 떼죽음을 당하였는데, 서로가 다른 문화와 문명,

언어와 관습이 통일에 장애가 되었다고 여긴 것은 아닌가. 후에 설문해자(說文解字)를 허신은 이렇게 설명했다.


“진시황은 천하를 통일한 뒤 승상 이사(李斯)를 시켜 당시 진나라에서 쓰던 문자와 자형(字形)이 다른 문자를 사용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문자를 통일했다. 통일 문자인 소전(小篆·진시황의 통일 문자 BC221)은 대전(大篆·통일 전 진나라의 문자)의 자형을

대부분 따르되 어떤 글자는 필획을 줄이거나 자형을 고쳐 만들었다.”

(이전에도 소전(小篆)은 계속 사용되어 온것으로 판명)

 

- 후한(後漢)시대 허신(許愼)

 

*세종이 고민했던 부분이 바로 이것이다.

한국도 당시 각 지방마다 고유 방언도 있었지만, 한자의 독음이 달라서 소통이 쉽지 않았다.

 

*한국의 한자음은 삼국 시대의 상고음과 중고음을 바탕으로 하여 늦어도 10세기 고려 광종
때에 확립되었는데, 신숙주가 1448년 동국정운 서문에 <어리석은 스승이나 선비들이

(1)반절법(중국어 표기법)을 모르고

(2)자모와 운모의 분류 방식도 몰라서

(3)혹은 글자꼴이 상사하여 한 음으로 하고

(4)혹은 선왕의 휘자를 피하여 다른 음을 빌리며

(5)혹은 두 글자를 합하여 하나로 하고

(6)혹은 한 음을 둘로 나누며

(7)혹은 다른 글자를 빌리고

(8)혹은 점이나 획을 가감하며

(9)혹은 중국 한음에 기대고
(10)혹은 우리말 음을 따라서

(11)자모와 칠음, 청탁, 사성이 모두 변하였다>고 하였다. 

중국의 한자음은 그렇게 한국에 토착하였다.

 

중국은 음성언어인 방언을 문자언어인 한자라는 일정한 체계로 표시하면서 하나의 동질감을 갖게 되었다.

그 동질감은 유사한 조자체계(형성)를 갖게 되면서면서 더욱더 강력해졌음은 물론이다.

그 동질감이 언어공동체에서 민족단계로 전환되기 까지는 상당시간이 소요된다.

각 지방에는 고유의 관습/문명/역사가 있어왔기 때문. 언어공동체가 유전자적인 민족단위로 묶이면서
극도로 기형적인 대다수와 소수의 구도가 만들어졌고, 결국 기존의 타민족과의 갈등이 발생하게 되었다.

 

*새로운 정권/왕조의 출현이 4대강 같은 성과를 내기위한 것인지

중국의 유일한 여상제(唐朝的女皇帝)인 측천무후(则天武后)는 측천문자(则天文字)을 창안했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창안된 글자는 실패하기 쉽다.



 

북경 이야기

 

1989 6 4일 천안문사건 천안문대학살 (天安門事件 天安門大虐殺)

 

 덩샤오핑(鄧小平)의 흑묘백묘(黑猫白猫) 이후

중국은 선부론(先富論)의 프레임내로 사회질서가 급속하게 변하였다. 사회질서는 결국 부의 분배의 심화로 이어졌다. 민주화열망이 어제 오늘일은 아니었지만, 1989년 당시의 발단은 살인적인 인플레이션, 고실업, 빈부격차, 그리고 부정부패였다. 중국의 민주화 운동이 주로 학생과 지식인들 사이에서 담론은 주로 내적 문제에 한정되었다. 예컨데, 학사문제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운동의 주체가 확산되었고 노동자 수준의 담론이 중심이 되어 갔다.

공산당의 부정부패 수준까지 담론화되면서 쟁점과 요구사항도 구체화되어 갔다. 이것이 반체제 반정권적인 내용을 담아내면서 농성형태를 띄게 된다. 요구사항은 결국 중국의 민주화였다.

(인민해방군/전위대에 대한 불만은 곧 공산당비판으로 연결되니 이것이 현대 중국인의 공산당에 대한 불신의 씨앗이다)

 
당시 덩샤오핑(鄧小平)은 중국 공산당 내 개혁파인 후야오방(胡耀邦 1981~87 총서기)과 자오쯔양(赵紫阳, 1987~1989 총서기)을 자신의 후계자로 정하고 그들을 정치적으로 후원하였으나 1982년 공산당 총서기에 취임한 후야오방은 덩샤오핑의 기대와는 달리 사상 해방, 언론 자유, 개인 자유의 신장, 법치주의 등 민주화 요소를 수용하여 정치 개혁을 추진하였다. 당내 보수파들의 반발로 결국 후야오방은 1987년 공산당 총서기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1989년 4월 15일, 후야오방은 오랜 침묵 끝에 사망했다. 후야오방의 사망은 여러 정치·경제적 부작용으로 들끓은 민심에 불을 부은 것이다. 4월 22일 후야오방의 서거를 추모하기 위해 모여든 20만명의 군중은 복권에 대한 내용이 없는 것을 알고 분노하였다. 자오쯔양이 방북중이었고 4월 30일 돌아오기까지 사태가 심각해져갔다.

성난 군중이 애국세력에서 사회혼란을 야기하는 세력으로 기사화됐다.

5월 20일 계엄령이 선포되기 전날 5월 19일 새벽 자오쯔양은 성난군중에게 눈물로 해산하기를 호소하였다.

후에 덩샤오핑과 보수파 지도부는 그를 체포하였고

참으로 잔인하게도 사망(2005년 1월 17일)때까지 가택연금하였다.

 

"6·4 천안문 사태의 잔인한 무력 진압은 명백히 덩샤오핑(鄧小平)의 책임이다."(趙紫陽)

"자오쯔양은 동란(動亂) 편이야. 당도 분열시키고"(鄧小平)

"CIA 첩자들이 동란을 부추겼어. 인민해방군 동원해 쓸어버립시다."(李鵬)

<1989년 천안문사태 당시 중국 최고지도부 비밀대화록>

자오쯔양의 회고록 <改革歷程><국가의 죄수(The Prisoner of the State)>

 

 참고 : http://www.jb-breaknews.com/sub_read.html?uid=3381&section=sc5

 

 

크레인 / 구조물을 제거하지 않고 최대한 그대로 두려고 애쓴 느낌

 

 

이곳이 바로 798광장!

 

 

광장내 인공연못 / 금붕어가 있다.

 

 

새로운 구조물을 신축

 

 

조선만수대창작사미술관

 

 

어딘가 친근해보이는 화풍

 

 

성진제강소(현 성진제강연합기업소)

 

"함경북도 김책시 쌍화동에 있는 제강소.

연간 30만t의 강재와 20만t의 강철 생산을 비롯해 스프링강·탄소강·규소강판·합금강·베어링강·알루미늄합금강·피아노선 등을 생산한다.

현재 북한의 9개 공업지구 중의 하나인 김책공업지구에 속해 있는 북한 특급기업소이다. 1945년 성진 고주파제강소로 출발해 철강과 기계류 등을 생산했으며, 1959년 연간 20만t 생산능력의 조강공장과 압연공장이 각각 가동되었다. 1961년 중판압연공장과 제선공장이 신설되었고, 1964, 1969년에 각각 열처리공장과 전기로를 증설했다. 제강원료는 김책제철소와 부령야금공장으로부터 공급받고 있다. 공업용수는 명천의 어랑천과 길주의 남대천으로부터, 전력은 허천강발전소로부터 공급받고 있다. 평라선(평양-나진)과 단천-길주를 잇는 도로가 지나며, 김책항을 이용한다. 또한 1985년 쌍포와 학성 사이에 무궤도 전차선 공사가 완공되는 등 수륙양면에서 교통이 편리하다. "

 

 

체육관 스러운 건물

 

 

워낙 오래된 건축물이다 보니 개보수중인 건물이 많다.

 

 

 

 

선반같은 기계류에서 뭔가 끊임없이 만들어낸다.

 

 

수증기한번 찍어보려고...

 

 

전자공업단지를 포기할 만한 가치가 있나?

무엇을 채워넣을 것인가? 워낙 북경이 크다 보니 통큰 결정도 가능한 법!

 

 

 

예술가 채지송 갤러리

 

 

배가 고파져서 798내의 사천음식점을 찾았다.

맛은 그냥 그냥!

 

 

핸드폰/열쇠고리/가방/다이어리 등 창작된 팬시용품을 판매

 

 

황학동 풍물시장 느낌...

 

 

 

 

 

 

 

 

어디서 본듯한 얼굴...알고보니

내 옆자리에서 밥먹던 그들이다.

 

 

중국의 아파트는 인테리어나 기본적인 가구조차 있지 않으니

IKEA수요가 꽤 있을 것 같다. 한국은 100% 빌트인에 가깝다.

 

 

 

전자상가 / 이곳도 데스크탑 PC가 사라져가고 있다.

PC방에서나 만나게 되겠지.

 

 

 

천안문광장으로 가려면 갈아타야 한다.

 

 

 

참...호텔이 크기도 하다.

 

 

 

 

 

건축중인 북경북역 / 워낙 수요가 많으니 계속 공급될 듯.

 

 

 

 

 

이제 다 왔다.

 

 

천안문동역

광장은 3개역에 걸쳐있다.

 

 

 

 

 

 

 

 

다행히도 통제가 없는 날.

 

 

 

 

이것은 무엇인고!(사진의 전면은 모주석 기념당)

 

 

 

제국의 느낌을 재현하는 것인가?

 

 

 

 

인민영웅기념비 (人民英雄紀念碑)

 

전면은 다음과 같이 새겨져 있다(모택동작).

人民英雄永垂不朽 인민영웅영수불후

인민 영웅은 영원 불멸이다

 

후면은 다음과 같이 새겨져 있다(주은래작).
三年以来在人民解放战争和人民革命中牺牲的人民英雄們永垂不朽

3년 이래 재인민 해방전쟁과 인민혁명 중 희생된 인민영웅들 영원이 잠들어 불후하리라

三十年以来在人民解放战争和人民革命中牺牲的人民英雄們永垂不朽

30년 이래 재인민 해방전쟁과 인민혁명 중 희생된 인민영웅들 영원히 잠들어 불후하리라

 

 

바로 이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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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京旅行记

 

북경어 이야기

 

월(越)/월(粵)과 절강, 복건북부은 대표적인 월어지역구이다. 동월 민월 남월 등은 백월로 통칭한다.

감강지역의 간어(贛語), 절강 강소지방의 오어(呉語), 복건 광동북부의 민어(閩語)는 백월의 백월어(百越語)와 관련이 깊다.

북방방언이 황하 이북이라면 남방방언인 백월어는 양자강(장강) 이남을 대표한다 할 수 있다.

동아시아의 각 지역 내지 왕조는 한자 조자방식을 채용하여 한자를 만들어내어 왔고

지금까지도 사용하여 왔는데, 해당 지역의 언어(입말)을 적을 만한 것이

한자였기 때문(당시 국가간의 교류상 필담에 의한 외교적 편이성도 중요했다).

 

백월(百越)은 현재의 대만과 베트남을 포함하는 고대 중국 대륙의 남방, 즉 강남(장강 이남)의 광대한 지역에 살고 있던,

월나라의 민족 중 하나이다(광서의 장족이 대표적인 월족이다. 따리大理에 거주하는 200만명 이상의 백족白族도 마찬가지).

 

*사서에 나타난 백월계 민족 : 춘추시기의 우월(于越), 전국시기의 양월(揚越), 한대 연간의 구월(瓯越) · 민월(闽越) · 남월(南越) · 낙월(駱越), 삼국시기의 산월(山越) 현재는 좡족(壯族) · 다이족(傣族) · 리족(黎族) · 둥족(侗族) · 수이족(水族) · 무로족(仫佬族)과 일부 고산족

 

이들은 북방세력이 확장됨에 따라 이주해온 북방인과 혼혈되어 왔는데, 이들이 현재 중국의 남방한족이다.

중국 공산당 정부가 거품물면서 강력한 민족통합책(보통화강제시행/북방위주역사기술/소수민족연원관계해체/소수민족차별책)

을 쓰는 이유와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다(한족은 다수의 민족을 뭉떵거린 개념인 것이다).

 

*한자가 한국에 유입된 시기는 본격적인 어휘 유입시기(불경 서적 유입) 보다 이르지 않다.

BC 108 한무제가 한서군 설치이후 한자가 대거 유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AD6 한국은 한자를 지배계층의 문어(글말)로 삼게 되었다.

 

 

북경 이야기

 

 

이른 아침에 왕징에서 나와 798, 천안문광장, 북경서역으로 이동할 계획이다.

 

798 Space


798예술구는 베이징 조양구 다›b즈(大山子)지역에 위치한 예술 거리.

이곳은 원래 구소련과 독일의 기술로 세운 무기공장(군수용 라디오나 포탄)이다.

냉전 이후 무기생산공잔이 대거 이전하였는데, 새로운 전자타운이 조성될 계획이였으나

2002년 예술가(대표인물 쉬융(徐勇) 십찰해후통 관광(什剎海胡同游) 사진전)들이 임대계약을 맺으면서 예술공간을 조성되었다.

2006년 798예술구는 정부에 의해 최초10개 문화창의산업 집중구로 지정되면서

"창의지구(創意地區), 문화명원(文化名園)" 의 슬로건과 함께 베이징의 아이콘이 되었다.

 

독일 기술지원 아래 건설된 ‘북경하북무선전연합기재공장(北京華北無線電聯合器材廠)'은 718연합공장에 위치해 있다.

1957년10월 718연합공장이 문을 열었는데, 공장건물은 바우하우스 (Bauhaus)스타일로 설계되었다.

 

*예술구의 번영, 발전을 추진하기 위해 조양구 지자체와 칠성그룹은 공동으로 베이징 798예술구 건설관리사무실을 설립,

‘조율, 서비스, 인도, 관리'를 목표로 예술구의 문화창의산업 발전을 추진하기도 하였다.

 2007년 베이징시 기획위원회와 문물국은 <제1기 근·현대 우수 건물 보호 명록>을 발부했는데 이때 798공장도 포함됐다.

규정에 따르면 명록에 선정된 건축물은 철거하지 못하며, 개조할 경우 심사비준을 거쳐야 하고 외관의 전체적 풍격을 고쳐서도 안 된다. 서울의 경우, 문래동 일대 공장 건물이 몰려 있는 지역을 예술구로 개조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라 한다.

 

*아트팩토리 관련 아티클 : http://productionschool.org/board/yproj/13544/page/10

 

 

쿠폰으로 일정 가액만큼만 사용하는 전력과금제

*Fuji S2Pro의 사진스러운 색감은 참 편안하다.

배터리효율이 좋지 않지만, 결과물은 나무랄 데가 없다.

 

 

철로집표처(매표소). 대리점에 해당한다. 판매수수료가 2원.

대리점이 어느 곳에나 있는 것은 아니다.

대신 어디 있는지 대충 알아두면 편리할 것 같다.

 

 

하계 06:30 - 21:00 / 동계 07:00 - 20:00

침대(軟臥)칸은 일찍 예약하여야 한다(3일전부터 가능).

 

 

D는 가장빠른 고속열차인 동차조(动车组) / T는 특쾌(特快) / K는 쾌속(快客) / Z는 직쾌(直快) / 보쾌(普快) 등이 있다.

가장 저렴한 경석(硬座) / 연석(軟座) / 경침(硬臥) / 가장 비싼 침대좌석인 연침(軟臥)이 있다. 

고속철 동차조(动车组)는 시속 250km로 어디든 가는 것이 아니며 아직은 심양 등 몇 곳되지 않다.

 

 

저렇게 줄을 서서 기다렸다 사면 된다.

 

 

나는 특쾌표를 샀다. 150원

21:30 표다. 아침 08:30 도착

 

 

 

왕징은 평소 사람도 많지 않은 그런 곳.

일명 베드타운

 

 

할인마트에 들러 양말을 구입(4켤래에 6원)

 

 

 

 

 

 

문명에 대한 과도한 집착! 아파트 건설붐은 꺼지지 않는다.

아파트 생활양식은 곧 서구화 / 문명화라 간주된다.

 

 

조양구의 아파트 건설 붐은 당분간 계속 될 것 같다. 

 

 

내가 첫날에 버스에서 내린 부근(종점)이다.

 

 

 

 

엄청난 땅덩어리!

 

 

느닷없이 외제차가 보인다.

 

 

한두대가 아니다!

 

 

우욱...

 

 

아하! 그래서...

 

 

 

끝이 없다!

 

 

조양구(朝阳区)는 북경에서 해전구(海淀区) 다음으로 인구가 많은 지역이고 지역은 가장 넓다.

해전구에는 21개 대학들이 위치하여 주민비율이 적은 반면 조양구는 거주인구 중심이니 쇼핑센터도 많은 편.

 

 

 

다샨즈에 위치한 대중전기의 할인마트인가???

 

 

이름모를 짠...달걀전

 

 

멀리 보이는 아파트단지가 바로 왕징이다.

 

 

798 진입로 맞은 편 저층아파트

 

 

군수공장 798번지의 공단입구

이것이 바로 현재의 798이다.

 

 

 

예술제가 있었으나 일정이 맞지 않았다.

 

 

생각보다 크다.

 

 

건물에는 아직은 냉전의 구호가 많이 남아 있다.

마오시대의 광풍, 오죽했으면 향수가 남았겠는가.

 

 

각각의 내부에는 뭔가를 만들어내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침이라 그런지 한산하다. 직원들도 출근하던 때라 연곳이 많지 않았다.

 

 

뭐 이런 곳에 까지 한국음식점이...(상해의 다윤로의 그 곳이 떠오른다)

 

 

 

뭔가 행사는 늘 있지만, 이곳에도 예술가가 넘쳐나면서 새로운 경쟁구도가 조성되는 것 같았다.

 

 

전시 구조물이라는 생각이 딱 들 정도로

건물 하나하나에 메시지가 있다.

 

 

 

 

우리동네의 문래동을 잘 아는 처지에서 우리에게도 필요한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서울에 적당한 전시공간이 없는 것은 사실이다.

 

 

 

 

이 차량 귀엽다! 정말 작다!

 

 

 

 

우리 시대의 괴물...

 

 

 

 

 

골룸?

 

 

남성성?

 

 

 

깜딱이야!

 

 

 

이런 방면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볼만하다고 생각할 듯.

 

 

300여개가 넘는 갤러리, 미술품 상점이 위치한 798의 예술품 거래규모도 이미 파리를 앞질렀다고 한다.

참고기사 :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09111401031834083002

 

 

 

꼬리인가? 매인가?

 

 

 

 

 

내용적으로 볼 때, 작품들이 기발하고 깜짝 놀랄 정도로 돋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북경에 이런 곳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약간은 긴장하게 한다.

 

*상해의 동방명주는 디자인자체가 테마파크 구조물스러워서

큰 인상을 남기진 못했지만 나에게 798예술구 경험은 괜찮았다(不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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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京旅行记

 

북경어 이야기

 

1986년 전국어언문자공작회의(全國語音文字工作會議)에서는 한자표음문자화안에 관한

작업중단을 발표하였다. 사실상 계획을 백지화한 것이다.

폐막인사에서 선언한 것이니 <성화>에 대한 목표는 한어병음자모에

모든 자원이 투입될 것임을 의미한다.

 

보통화보급이 국어 지위로 격상될 때까지 앞으로 국가정책의 최우선과제중 하나가 될 것이다.

(참고 : http://blog.joins.com/media/folderListSlide.asp?uid=kangilee&folder=30&list_id=6864732)

 

중국의 방언의 2대 구획은 시경(詩經 BC 6C)으로 대표되는 황하강 이북의 북방방언과

초사(楚辭 BC4)으로 대표되는 장강(양자강) 이남의 남방방언이다.

이 둘은 극명한 차이를 보이는 것이 사용되는 어휘(주변의 민족과 국가들로부터 교류가 있었으니

외래어도 상당수 있다)와 음운체계, 부사/동사, 형용사/명사간의 수사법 등이 그것이다.

 

시경 : 북방 중원의 황하 유역을 중심으로 한 4언체 운문(韻文)

초사 : 초나라의 문학 양식, 방언, 성조(聲調), 음운(音韻) 및 풍토물산을 운용

 

한나라 황제 진시황은 최초로 통일을 이뤄냈지만

더 중요한 것이 한자를 공통으로 사용한다는 점을 들어 '글말'의 한계를 극복하고

그것이 '입말' 수준의 역할을 하도록 6개국가(한/위/조/연/제/초)에서 제각각

사용하던 한자를 제거, 진에서 개량한 소전(小篆)을 편찬하여 사용토록 하였다.

이 것은 어마어마한 문자개혁이 된 것이다. 각각 다른 민족이

정치적으로 만들어 진 문자체계를 공유하고 스스로 '한족'화되는 단계는 아닐까.

 

분서갱유(焚書坑儒) 역시 그런 차원이었으리라 본다.

*焚:불사를 분. 書:글 서. 坑:묻을 갱. 儒:선비 유. 책을 불사르고 선비를 산 채로 구덩이에 파묻어 죽임

 

 

북경 이야기

 

망경(왕징, 望京) 

 

한중수교 이후 왕징은 한국식 거주공간의 양식의 수요가 폭증함에

공급된 고층아파트로 채워졌고, 외지 유학생들이 대거 거주하면서 개발된 지역이다(현재 7만명 이상).

 

*특별히 중국어를 모르더라도 살아가는데 큰 불편이 없다.

학교, 아파트, 은행, 부동산, 식당, 화장품, 미용실, 식료품, 당구장, PC방, 태권도장, 노래방, 바 등

한국어로 표시된 간판과 안내문, 조선족 종업원 등이 많기 때문. 

 

게다가 동북3성에 거주해온 조선족 재중동포가 이전해오면서

민박이 크게 늘었고 코리아타운이 형성된 것이다.

간판 등 한글노출 빈도가 길림수준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국식 업종이 많아서 비교적 친근하다 할 수 있다.

북경외각(6~7환)은 대체로 황량하였지만, 부동산가격이 크게 오르면서 거주지역으로 변모하였다.

그 이유는 북경 도심내 CBD가 개발되는 등 사무실 공급이 크게 증가하면서부터이다.

 

 

 

북한 직영의 북경 옥류관 제1분점

어두워서 흔들려 버렸다.

 

 

8시즘에 도착했는데도 손님으로 꽉 차 있다.

8시즘에 공연이 있기 때문인듯.

 

 

이것이 바로 평양소주이다. 북에 있던 진로소주 제조시설에서 만들어졌다.

가격은 100원(16000원) 여행당시 환율은 2만원에 육박!

 

 

쌀/강냉이/효모/벌꿀로 맛을 냈다고 한다. 

인공첨가물은 사용치 않는다고 한다.

 

 

한국소주에 비하여 7도 정도가 더 높다. 25도!

한국에 수출되는 평양소주는 23도라고 한다.

주문은 여기서! http://www.koreadpr.co.kr/shopping/shopping-detail.php?pi=91

 

한국소주에 너무익숙했던지라 처음에는 보드카느낌이었지만,

도수에 비하여 넘김이 아주 부드러웠다. 알콜특유의 화학적인 향

도 나지 않았다(한국소주는 술받지 않는 날, 그 거품물게 하는

냄새가 있지 않던가!).

 

 

개고기 수육!

피망과 대파가 어우러져 독특한 맛을 낸다.

 

 

지하철 공사중인 왕징!

 

 

왕징의 야경이란 이렇다.

말그대로 콩크리트 구조물내에 미약한 존재가 되어 버린다.

 

 

아파트단지가 크므로 지형파악도 하면서 이동해야 한다.

 

 

대형할인마트 월마트

 

 

진짜 신도시이다. 중국스러운 콘텐츠는 없다.

 

 

처음에 지나쳤던 그 호텔...나는 아주 가까이 있었다.

 

 

 

 

땅이 워낙 크니 큼직큼직하다.

 

 

차량이 많지 않아서 신호와 관계없이 무단횡단하지만, 주의 해야 한다.

그만큼 차량 속도가 빠르다.

 

 

고급주택가

 

 

삼겹살 칼국수 식당

아래 보이는 철로 집표소에서 기차 표를 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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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京旅行记

 

북경어 이야기

 

한국에서의 동북방언이란 함경남도의 영흥 이남지역(영흥.고원.문천.안변)을

제외한 함남 정평 이북의 함경도에서 쓰이는 국어이다.

예컨데, 함경남도 방언, 함경북도 방언, 량강도 방언을 일컫는다.

(참고:동서방언이란 조선반도를 종적으로 나누어 동부방언은 동북방언,

륙진방언, 동남방언 및 중부방언의 강원도 동부지방)

 

중국어에서의 북방방언는 화북지방과 동북지방의 방언으로
분포지역은 주로 북경, 천진, 하북, 하남, 산동, 요녕, 길림, 흑룡강, 그리고 내몽고 일부지역이다.

동북방언은 중국의 조본산(趙本山; 낙엽귀근 落葉歸根, 2007) 등 재담 배우들이

동북어 화자였기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일반적인 동북방언이라 함은 심양/길림/하얼빈 등이고

그 외의 지방 방언은 거의 알아듣기 어렵다. 예컨데, 천진방언조차 성조가 엇갈려 있어

주의깊게 듣지 않으면 전혀 알아듣기 어려운 현실이다.

 

북경 이야기

 

후통(胡同) 

 

후통은 청조당시 만주인을 만날 수 있는 거주밀집지역이다. 그래서 胡同이라 불렸는지는 몰라도(?)

북경의 중심지(1~3환)내의 중심부 구(舊)시가지 지역은 후통으로 복잡하게 얽혀있다.

벌건 벽돌로 만든 단층집으로 서로 서로 연결되어 있고 문은 공유하는 형태인데, 이러한 가옥구조물이

수 없이 연속되다 보니 골목이 형성된 것이다. 북경에는 권력(?)가들의 이름을 가진 후통이 3600개가 있고

 그런 경우가 아닌 무명의 후통이 쇠털처럼 많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

2008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70%이상의 후통이 철거되고 있고 현재도 철거중이다.


 

 

 

일단 아침식사를! 어제 그 식당을 다시 찾았다.

대표적인 아침식사이자 간식인 유조(油条[you tiao])

가격은 0.6원(90원) / 꽈배기의 기원이 된다.

이 음식은 짐작하건데, 만주인들이 즐긴 것이라 보여진다.

 

 

죽 / 죽에 무엇을 넣느냐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

닭고기 / 소고기 / 물고기도 사용된다. 그냥 죽은 0.8원(150원)

 

 

왕만두 / 중국에서는 바오즈(包子;포자)라고 한다. 바오즈(包子)는 기본적으로 둥글다(圆).

의미 그대로는 찐빵이다. 교자(饺子)는 반원형이라는점에서 차이가 있다.

한국의 야채찐빵을 떠올리면 된다.

 

 

후통내 식당이라 그런지 아침에만 집중적으로 판매하는 메뉴가 별도로 있다.

유조와 훈툰, 죽은 인기메뉴이다.

 

 

가격을 따지면 유조 0.6  / 포자 0.6 x 3 / 훈툰 1.3 / 죽 0.8 = 4.5원

환율을 160원으로 하면 720원의 식사이다.

 

 

물론, 음식은 어디에서 먹느냐에 따라 다르다.

화장실에서의 결과물이야 같겠지만...

 

 

어디에서 먹느냐...

 

 

어디에서 무엇을 먹느냐...

 

 

어디에서 무엇을 어떤 환경에서 먹느냐...

 

 

주섬주섬 짐을 챙긴 후 다시 떠난다. 금일은 지인을 만나 왕징으로 이동한다.

지붕의 플래이트를 제거하는 기중기

저런 중장비들중에는 한국 제품이 많은데, 거의 철거와 재건축에 쓰인다 보면 맞다.

  

 

이 곳 후통의 경계가 2환임을 알리고 있다.

 

 

후통의 주변 모양새만 보면 영락없는 시골길이다.

 

 

2환을 넘어가는 입구 / 이곳 부터는 후통보다는 건물이 많다.

 

 

1환 / 2환 경계도 연못운하가 있는데, 2환 / 3환경계에도 마찬가지.

이곳에서 낚시하는 사람도 볼 수 있다.

 

 

갖은 식재료를 판매하는 재래시장 / 이들에게는 꽤 괜찮은 수준

개구리 / 자라 / 물고기 등 없는게 없다.

 

 

시장 내부

 

 

사천식 마라탕 / 개당 0.3~0.5원(RMB)

바지를 까입고 엉덩이를 노출하는 것은 별일이 아니다.

 

 

이 곳은 비교적 조용하다.

 

 

일요일 오후 식사시간이라 그런지 택시들이 주차해 있어 거리가 한산하다. 

 

 

맥주를 밖에서 사들고 식당으로 들어와 한잔하며 더위를 이겨낸다.

매운 사천식 닭고기 덮밥(6~8원)을 주문!

 

 

무난한 연경맥주 / 가격은 4원(RMB)

 

 

이곳 구로우외부 3환 밖은 별 볼거리가 없어보인다.

 

 

건국문(과거 성터의 문중 하나겠다)

 

 

이곳이 과거 북경역이다. 현재는 북경서역이 생기면서 역할이 줄었다.

 

 

 

관광객이 많다면 일본 덮밥 체인점 요시노야(吉野家)가 있다.

1899년 Eikichi Matsuda가 처음 동경에서 시작하여 현재는 전세계적으로 체인이 1000 점포 이상이 운영되고 있단다.

 

 

이곳 일대의 건축물 규모는 상상을 초월한다.

워낙 유입 / 유동인구가 많다 보니 호텔객실수도 신라호텔2배 이상.

 

 

북경 국제 호텔로 이동

 

 

 

 

 

북경 국제 호텔은 이름에 걸맞게 국제적인 행사가 자주 있단다.

 

 

웅장한 규모의 호텔 / 입지로 보면 천안문 앞 광장 주변이 역삼동이나 삼성동이라 할 수 있다.

 

 

 

 

 

2층 행사장은 예술품 전문 경매행사가 있었다.

가짜 위조품도 종종 있단다(진품이 아닌 경우 보증하는 경우도 있다지만

소더비가 아니고서야 100% 믿기는 어려운 것이다).

 

 

왕징으로 이동하던 중 촬영. 아파트인지 오피스인지 모를 거대한 건축물이 종종 보인다.

북경 바람이 매서운 것인지 베란다의 개념이 약하다.

 

 

왕징은 4环 ~ 5环내에 위치한다.

현재 북경은 총 6环으로 이루어져 있다.

 

 

왕징루(望京路) / 다국적 회사의 본사 건물이 꽤 보인다.

 

 

 

왕징(望京) 도착 / 이곳이 바로 한국인 밀집지

동시에 조선족도 많이 거주하는 듯.

 

 

이렇다.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딱히 재밌는 지역은 아니다.

 

 

KFC에도 중국스런 메뉴가 있다. 현재 조식시장 전쟁중.

 

 

한식당이 갑자기! / 반갑지만 참아낸다!

 

 

이곳의 아파트 역시 베란다 개념이 상당히 약하다.

주택의 평면 / 설계도 좋다고는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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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京旅行记

 

북경어 이야기

 

알려진 바 대로 믿고 신뢰하는 것이 아닌 스스로 찾아 나서는 것도 재밌는 여행이다.

물리적으로 '존재'를 이전하는 것만이 여행은 아닌 것이다.

 

지방방언은 역사의 화석이자 인류의 현재양태이다. 북경어가 한어방언의 일부냐 아니냐는 논외로 하자.

비록 한자가 중국을 지배하고 통합하는 역할을 하고는 있다지만 어음의 차이는 결코 극복하기 어렵다.

초등학교때는 보통화를 읽고 쓰고하는데 할애되겠지만 성장하고 사회화되면서 결국 지방방언과 병존하게 되는 것이다.

 

동북 3성(만주지역)으로 퍼져있던 한족과 만주족의 영향은 현재 보통화 성립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는데,

하얼빈방언과 심양방언 중 가장 보통화에 가까운 음운은 심양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만다린어는 청조 당시 한족이 관리가 되기 위해 배우던 언어로 요동지방에서 사용되던 방언이다.

 

*만주어는 알타이어 계통에 속하는데 어찌 중국어(시노-티벳 어족 계통)와 융합될 수 있었을까하는 의문은

중국 소수민족 지배역사 1000년간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온 것을 감안할 때 이해될 수 있다.

 

원래 한어는 단음절 어휘가 대부분이고 8~9성조가 일반적이다. 한어어휘는 외래민족의 지배로 말미암아

급격히 증가하였고(한족은 외래지배민족을 일천하고 교양없고 잔인하고 무식하다고 교육받는 것인지 하나같이 같은 소리를 한다)

알타이 계통의 언어와 융합되는 사이에 어휘의 복음절화와 동시에 성조가 반으로 줄고

문법과 탁음, 구개음화 현상 등 상당한 변화가 있어왔다(부사, 형용사등 수식어위치,시제,어기사,조사 등).

 

지방방언에서 강력한 북경방언섬이 흩뿌려지듯 형성되기도 했는데, 군기지설치로 인한 것도 다수 있다.

실제로 중국영토의 확장기는 청조 중기이다(한족이 정권을 잡은 1912년 중화민국 임시정부를 구성한

당시에야 만주 전체를 차지하게 되었다).

 

*청조는 만주족을 동원하여 군사조직을 만들었는데, 이 팔기군인데, 후에는 몽골족, 한족의 팔기군도 조직되었다.

특히 요하유역의 한족 팔기군은 전체 병력 중 3/4을 차지하게 되었는데, 만주족들과 오래 살다보니 언어 역시 동화된 것이다.

청조당시 한족을 통치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였으니 요동한족의 방언이 가장 유용했음은 당연하다.

*요동방언은 중국방언 중 어미변화가 가장 심한 편.  

 

여행 이야기

 

왕푸징(王府井 Wángfŭjĭng 왕부정)

*왕푸징은 명조 당시, 왕부(王府 왕족 저택)의 우물이 있었던 것에서 유래.

 

이곳 왕푸징은 중국 최고의 상업지라 할 수 있다. 물론, 광주나 상해처럼 쇼핑할 것들이 그리 다양한 편은 아니다.

지금도 명품샵들이 크게 증가추세이고 관광객들로 넘쳐난다. 그렇다 보니 품질 대비 가격도 좋은 편이 아니다.

규모에서 차이를 보이는 대형쇼핑센터 Oriental Plaza (Dōngfāng Guăngchăng; 东方广场)에는 아이쇼핑하는 이들로 꽉 차있다.

북경에서 가장 큰 외국원서서점 (wàiwén shūdiàn; 外文书店)도 가까이 위치해 있다.

  

 

 

건너편으로 보이는 왕푸징 먹거리 거리

대형 옥외광고물은 한국/일본것이 대부분이다.

 

 

임대율은 상당히 좋은 편 / 이곳의 입점이 안테나샵으로서 홍보효과가 있기 때문이겠다.

 

 

왕푸징 서점 옆길 북경카오야 전문점인 전취덕과 천진 거우부리바오즈점이 위치

 

 

이곳이 거의 중심부라 할 수 있다.

 

 

왕푸징은 역사적으로도 오래된 상권!

예전에는 왕족들의 저택이 밀집되어 있던 지역이었으나

 외국인 유치를 위해 전략적으로 거리를 조성하면서는 외국인 관광들에게 인기있는 지역이 되어 버렸다.

아직까지도 후통의 이름을 그대로 달고 있다(후통의 이름은 주소, 지번역할을 한다).

 

 

청조 당시 인력거 재현

피지배 민족이었던 가상의 정치적 공동체인 한족의 애처로운 삶

 

 

블럭을 지나면 바로 볼 수 있는 것이 롯데백화점

 

 

아시아에서는 이미 다국적화된 것이랄까.

 

 

이곳도 후통의 지명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신축중인 쇼핑센터

 

 

 

Sunworld Dynasty Hotel

 

 

오래된 성당

 

 

동당성당은 왕푸징성당으로 불린다. 

 

 

왕푸징은 롯데백화점앞 사거리를 중심으로 상권이 나뉜다.

 

 

이런 곳에서는 주로 서책 그림 등이 거래된다.

 

 

국강란주면관 / 서북지방 특색!

 

 

 섬서간식(陕西小吃)에 해당하는 량피(凉皮)

양파향이 강하다. 가격도 싸고 빨리 먹을 수있고
 배도 부르지 않고 여자들이 좋아할 듯.

 

 

이것 외에도 더 시켜보고 싶었지만, 저녁약속이 있는 관계로 여기까지!

 

서안의 刘静(유정) 코멘트 :


섬서특색 량피(凉皮)는 밀가루를 얇게 반죽해낸 것의 총칭

량피凉皮,미피米皮, 간면피擀面皮
이중 擀面皮가 가장 맛이 좋고 만들기 쉽지 않다.

얇게 민 밀가루면(擀面)의 조리방법은 다음과 같다.

 

*面揉好后要用水洗,把淀粉全都洗出来,然后将洗出来的面粉放在小火上加热,还要不停的用木棒搅
 等到比较粘稠的时候再用擀枨擀开 / 在放在锅里蒸
 正宗的做法工续比较多,很麻烦但是很好吃

*嚼劲 : 嚼劲儿 씹는 질감 또는 그 느낌

 

 

 

역시 섬서특색인 삐앙삐앙면

 

 

담배나 술의 판매하는 전문점이 꽤 보인다.

성인만을 대상으로 하고 24시간 하는 곳도 있다.

북경은 상해에 비하여 브랜드 편의점이 매우 적다.

 

 

저녁에 새로운 골목을 탐방해보기로 했다.

여행자가 혼자 걷기에는 약간 불안해보이는 분위기이긴 하지만 용기를 내고

걸어가본다(카메라를 휴대하는 것이니, 아무래도 눈길을 받게 된다).

 

 

 

대로로 나와버렸다.

 

 

호텔로 들어와서 짐정리와 충전 후 다시 나와야 한다.

 

 

호텔이나 관광지나 길거리 시장이나 이러한 점토모형이 널렸다.

당연히 가격은 저렴해야 한다. 50원 이상 부르면 절대 사지 말길.

 

 

이곳은 저녁/밤에 뜰에서 바를 운영한다.

외부에서 맥주를 사와서 먹는 것도 자유.

 

 

전화를 개통했다.

 

 

라마불교 사원인 용화궁

 

 

갈아타기

 

 

 

 

양양과 약속장소인 태양궁으로 향한다.

 

 

지명만 '궁'으로 현재는 없다.

과거에는 '궁'이 있었다고 한다.

 

 

일단, 귀신가로 가보기로...!

 

 

귀신가로 가려면 동직문으로 이동하여야 한다.

 

 

붉은 조명이 가득한 식당가에는

늦은 시간까지 매운 요리를 먹느라 정신이 없다.

 

 

이곳이 조성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라고 한다.

 

 

그나마 하나 있는 달짝한 음식점(쥬스/빙수/우유/커피 등)

 

 

저것이 500m는 넘게 있는듯.

 

 

 

 

호남과 사천지방 요리가 주메뉴이다.

 

 

이것의 이름은 잊었다.

 

 

망고...

 

 

산리툰으로 향한다.

 

 

대사관거리를 지나서...

 

 

외국인 쇼핑상가

 

 

슬슬 바들이 보인다.

 

 

 

이곳이 유명한 지우바지에이다.

 

 

북경의 이태원이랄까?

홍대랄까?

 

 

 

모두 술집이다.

 

 

이곳을 지나면 그런 곳이다.

외국인이 더 많아 보인다.

 

 

북경에서 유학중인 학생들만 해도 채우고 남을 것이다.

 

 

약속이라도 한듯...모여있다.

 

 

먼거리를 걸어왔으니...쌀국수와 샐러드로 썰을 푼다.

 

 

흥분한 서양애들이 행인간 접촉사고(?)로 인해

거리에서 고성을 내기도 한다.

 

 

2~3시까지는 마셔대는 것 같다.

하긴 멀리 타지로 나와 있으니 오죽 심심하겠으랴.

 

 

호두와 치킨샐러드...절묘하다.

베트남 식당이지만, 가격대는 높다.

산리툰은 그런 곳이다(압구정동 시세).

 

 

그렇게 밤은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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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京旅行记

 

북경어 이야기

 

북경에서만 쓰이는 특유 어휘를 알아보도록 하자.

 

 북경어와 보통화는 음운과 문법적으로 매우 가깝지만 구어적으로는 차이가 있다.
다음의 예문을 보자. 
의미가 같다고는 하지만 표현방법상에 있어서는 판이한 차이가 있다. 

 

普通话:这里没有人关心我。

여기에는 내게 관심두는 사람이 없구나


北京话:我整个儿一后娘养的,姥姥不疼舅舅不爱

우리 엄마는 친엄마가 아니야(새엄마는 절대로 자기자식처럼 대할 수 없다)

새외할머니나 새외삼촌 모두 나를 신경쓰지 않는다 .

 

整个儿 [zhěng gè] [형] 전부의. 모든. 전체의

舅舅 [jiù jiu] [명] [口語] 외숙(外叔). 숙숙(叔叔)

 

*보통화는 그냥 지나치자는 권유의 의미지만 북경화는 번거롭게 지나간일을 기억하는 데에 대한 소심함을 원망하는 의미.

*그건 북경인의 소심함에 대한 빈정댐이 담긴 것인가?

 

 普通话:你看不顺眼么?那你打听一下我是谁?

나한테 의견이라도 있어? 내가 누군지 알아나 보시구려.


北京话:怎么着,您哪儿不忿儿啊?您也不扫听扫听爷是谁!

왜? 어디가 맘에 안들어? 내(할아버지)가 누군지 알아나 보시구려.

 

*여기서 할아버지라고 자칭하는 것은 자신이 상대방의 할아버지라는 말.

즉, 자신이 상대방보다 훨씬 지위가 높다는 뜻.

그래서 화자 스스로 어떤 사람인지 잘 알아 보라는 뜻.

 

不忿儿 [bù fènr] [형] 받아들이지 않다. 불쾌하다

扫听 [sǎo ting] [동] 탐문(探問)하다. 물어보다
 

여행 이야기

 

1. 경산공원(景山公園)


경산은 북경 중심부의 산인데, 언덕수준에 불과하다. 그만큼 북경은 천혜의 입지이다.

이 곳에 공원이 들어선 것은 청나라 순치(順治) 12년(1655년)이다.

이전 지명은 만수산(萬壽山)이었으나 당시 현재의 경산으로 불리게 되었다.

경산공원이 북경 시내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북경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고 한다.

정상에는 세 개의 정자가 있는데, 황실 정원을 내려다 보기 위한 곳이며 전체 면적은 23㎢이다.

소나무와 삼나무가 울창하고 고목들이 솟아있다.


1179년에 공사가 시작되었으며, 명 영락(永樂) 18년(1420년)에 석탄과 자금성 통자하(筒子河)의 진흙들을 가져다가

원나라 건축물인 영춘각(迎春閣)의 옛 터에 쌓아 두었는데, 이것이 하나의 흙산을 이루게 되었으며

당시에는 "만수산(萬壽山)"이라고 불렸다. 또한 명 숭정(崇禎) 17년(1644년)에는 이자성이 북경성을 공격했을 때로,

당시 황제였던 숭정은 궁궐을 빠져나온 후 이 곳 경산에 올라와 스스로 나무에 목을 걸고 죽었다고 전해진다.

 

 

2. 십찰해(什刹海)

북경, 자금성의 서쪽, 북해공원에 위치
· 십찰해란 전해. 후해. 서해 및 그 주변의 146.7㏊에 달하는 범위를 지칭. 3해의 수면은 33.6㏊(총 면적의 23%)

호수 주변에 10개의 사찰이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현재는 음식점과 상점들이 들어서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우리에게 낯있은 스타벅스도 있고, 이쁜 노천카페들이 많다

 

 

 

  경산공원 근방 / 제사 지내는 곳(?)

 

 

아직도 선명한 만주글자

 

 

경산공원 입구 / 간단히 입장료 내고 통과

 

 

정원이다 보니 오래된 나무들이 있다.

북경은 서울 같지 않게 자전거 타기 좋은 지형이다.

거의 평평한 편인데다  '환'형태의 정방형 대로로 설계되어 있기 때문.

다만 경산공원의 고지는 상당히 높은 편.

 

 

 

어린 왕자에나 나올 법한...

 

 

이국적인 풍경이라니...

 

 

Fuji S2Pro / Nikon D1x 바디에 대한 신뢰가...점점...

 

 

꽤 장관이다.

 

 

경산공원 입구(나는 출구->입구로 나온 상황)

 

 

산좌혜문

 

 

경산동로

 

 

 

 

이날은 버스가 다니지 않았다.

광장에서 연습이 있었기 때문.

 

 

교통 통제중인 경찰

 

 

자금성 연못주변의 후방

 

 

 

결혼식전 야외촬영지로 각광받는 곳

 

 

이곳에서 여행 마지막날 자장면을 먹었다.

 

 

8원(당시는 1600원에 육박했으나 지금은 1200원 즘)

 

 

 

신종인플루엔자로 사람들의 활동이 많진 않았다.

다만, 왕푸징에는 사람들이 징그럽게 많다.

 

 

저 건너 블럭이 바로 왕푸징로이다.

 

 

동화문 유아원

 

 

보도의 폭이 넓어 보행이 편하다.

요철이 좀 있는 편. 주의하지 않으면 넘어질 수 있다.

 

 

 

아이를 배웅하러 나온 부모들

 

 

동래순 북경점 / 규모가 상당하다.

동래순의 훠궈가 가장 맛있다지만, 그만큼 재료별로 단가가 높다.

 

 

광장 인근이므로 VIP 방문이 잦을 듯.

 

 

동래순과 연결된 고급호텔 REGA

 

 

모양은 저래도 고급호텔이다.

 

 

1환 전의 공원

 

 

1환을 넘는 순간

 

 

천안문광장 주변 관공서들

 

 

 

 

광장을 통제중이라 여기저기서 불만과 탄식이...

 

 

외국인들이 더욱 아쉽다.

 

 

 

 

 

화장실이 급할 때는 고급 호텔로 직행하라!

 

 

2호선 왕푸징역

 

 

왕푸징 서점 / 중국에서 가본 서점중 가장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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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京旅行记

 

북경어 이야기

 

북경에서만 쓰이는 특유 어휘를 알아보도록 하자.

 

碍事儿 [ai shi er]

他住在这儿, 有点碍事儿。 

그가 여기에 사는 것이 방해가 좀 된다.

 

碍事儿 [ai shi er] 불편하게 하다(不方便)

지장을 주다(妨碍) 폐를 끼치다(添麻烦) 소란피우다(捣乱)

 

cf. 절강 및 상해화 令不清 [ling fe qing]

복건 및 민난(대만)화 阻礙 [zu ai]


 

여행 이야기

 

1. 십찰해(什刹海)

북경의 중심은 역시 자금성이다. 일명 고궁박물관으로 북서쪽에는 북해공원이 위치한다.
원조 당시 몽골인들이 바다로 부르면서 '바다'가 된 것인데 그 위치에 따라

전해 / 후해 / 서해 및 그 주변을 말한다(3해 수면 면적은 33.6㏊(총 면적의 23%)).


실제로 호수의 주변에는 오래된 10개의 사찰이 있다.

현재는 야외 음식점 / 테라스로 구성된 작은 까페 / 악세사리 상점들이 있다.

노천카페들의 가격대는 높은 편은 아니지만, 맥주는 꽤 비싸게 느껴진다.

 

2. 경산공원(景山公園) 주변

역시 후통(거주중심지)와 근린시설이다. 북경의 중심은 후통 면적이 80%가 넘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경산공원 주변과 구로우 주변의 후통에는 원조/청조때의 명문가들이 많단다.

도시화 하면서 급속히 사라지긴 하지만 아직까지는 '골목문화'의 전형이 남아 있어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슬람 계통의 회족식당이 자주 눈에 띄는데, 외관상 볼 때 습관이나 생활양식이 판이하게 차이가 나는 것 같다. 

 

 

 

고로(鼓楼) 상권입구

 

 

游戏는 불법 복제된 게임 타이틀을 판매한다.

정품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XBOX 360 / PS3게임들이 주를 이룬다.

 

 

간식 / 타 지방의 특색이 주로 간식[小吃]이 된다.

 

 

사라져 가는 후통

 

 

자금성 후방의 후해[后海]와 북해[北海] 주변은 온통 상업화되어 있다.

이곳에서는 카메라용 메모리카드 가격이 한국의 두~세배이다.

 

 

인력거 / 호객행위가 많으니 주의

 

 

서울로 치면 오리배

 

 

 

타보고야 싶지만...혼자서는...무리...이자 낭비라 생각...

 

 

 

바 주변의 자전거 대여소

 

 

관광지는 늘 가격이 높다.

여행자에게도 마찬가지.

 

 

한강의 오리배마냥 배를 일정시간 빌릴 수 있다.

 

 

老字号는 정부에서 지정한 오래된 가게이지만 그렇다고 맛이 뛰어나거나 하진 않는 것 같다.

 

 

이런 곳에서는 음식이나 맥주를 충분히 즐기긴 어렵다.

그만큼 물가가 높다.

 

 

흔히 볼 수 있는 광경 ^^

 

 

북경자전거 촬영지랄까?

 

 

노천바

 

 

 

 

 

후해 시민공원을 지나 자금성으로 걸어가보자.

 

 

자전거 전용도로 만큼은 90점!

 

 

후통을 통과해보기로 했다.

 

 

한가로운 후통

 

 

아이들의 놀이공간

 

 

자전거 이용에 딱 적합

 

 

경산공원 전방

 

 

이슬람 음식점

 

 

란주소고기면

 

 

연길냉면과 라오베이징 소흘 / 자장면

가상채[家常菜]는 한국으로 치면 가정식 백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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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京旅行记

 

북경어 이야기

 

한국의 한자 독음과 대체로 음운상 대응이 이루어진다.

한국의 한자 독음을 안다면 보통화, 북경독음도 대체로 추정가능하다.

한어어휘는 기본적으로 단음절이나, 북방세력이 장기간 한어를 수용하면서

성조가 줄고 복음절 어휘가 큰 폭으로 증가하였다.

8~9성조인 한어가 3~4성조가 되고 어순에 있어서도 SOV와 SVO요소를 둘다 갖추는 등

1000년간 한어는 극심한 변화를 겪게 된 것이다. 간화자, 약자도 다방면으로 사용되면서 음을 표시할 형성자도

지속적으로 만들어졌다(기존에 만들어진 한자와 지방에서 사용되어온 한자들은 활용도가 떨어지면서 소멸되었다).

이른 바 서역어(이란/돌궐)/몽골어/만주어의 대표적인 특징을 고루 갖추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강력한 보통화 정책으로 말미암아 현재도 진행중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반면 남하한 한족은 오/민/월족(장족/동족/경족)과 잡거하는 동시에 현지 음운과 융합되면서

전혀 다른 언어로 변모하게 되었다(실제로 지방방언에는 어마어마한 양의 가차자가 쓰인다).

 

*티벳의 장족과 위구르족은 고유의 언어를 지켜내고 있다.

 

여행 이야기

 

1. 중국 전국의 지하철은 2원이다.

멀리가도 가까이가도 2원이다.

 

2. 택시 기본요금은 10원이다.

서안/성도는 6원, 대련은 8원부터 시작한다.

 

3. 중국 전국의 버스요금은 1원이다.

멀리가도 가까이가도 1원이다.

 

 

 

구로우따지에 서쪽방향으로 직진하면 덕성문이 나온다.

덕성문은 만리장성 명13릉 등을 가는 버스편이 있다.

 

 

본격적인 후통의 시작 / 우측은 얼동공원(어린이들의 숨박꼭질 동상도 있다)

 

 

철거가 계속 되고 있다.

 

 

 

 

 

사람들이 왜 북경을 찾는지, 정부 혹은 관광국은 모르는 것 아닐까?

 

 

 

자오위엔주 호텔

빈관급이지만 시설은 나쁘지 않다.

 

 

후통의 이름을 잘 기억하여야 한다.

 

 

내부 후통의 문을 지나면 문을 하나로 공유하는 다세대 주택 느낌이다.

그래서 자전거가 저렇게 많다. 진정한 이웃사촌이랄까?

 

 

건물 한동을 객실로 사용한다.

 

 

입구

외국인들이 특히 많다. 방은 1박에 RMB 100 ~ 250

 

 

내가 묶을 방은 2층 나쁘지 않다.

샤워기만이 있다. 욕실은 없다.

 

 

 

후통은 대체로 이런 분위기이다.

 

 

허물어지는 후통

 

 

후통에는 구멍가게와 식당, 이발소 등 근린시설이 잘 자리잡고 있다.

구멍가게는 과일/야채/식재료 등 없는게 없다.

 

 

일단 출출하니 식사를!  

볶음밥(3원)

 

 

후통 골목 내 우리네로 치면 가정식 백반식당이지만

중국식은 백반식이 없다. 중국어로는 家庭餐馆(가정찬관)

4원으로 약간은 매콤하지만 무난하다.

 

 

먹다가 너무 배불러서 남겼다.

  

 

호텔 정원은 맥주를 사와서 마시면서 쉴 수 있도록 했다. 

 

 

구멍가게에서 사온 연경맥주(3원)

개인적으로 청도맥주(4원)도 약하다고 생각했는데, 연경맥주는 더 약하다.

 

 

 

베트남 / 태국 음식점

외국인들이 주로 찾는 식당/까페는 wifi가 기본이다.

 

 

 

후통상권은 이러한 점포들에 의해 늘 활기차다.

 

 

 

 

훠궈 전문 식당

 

 

 

상해나 광주는 스쿠터가 자전거를 대체해가는 편이지만, 북경은 전기자전거가 많다.

전기자전거는 한국돈으로 10만원, 고급형은 30~50만원 수준.

기존 자전거를 전기자전거로 개조하는 방법도 있다.

 

 

 

후통 대로변의 식당

밤에는 여는 것 같다.

 

 

고로(鼓楼)

상층에는 전망대와 북이 있다.

 

 

고로 뒷편에는 인력거들이 정차해 있다.

 

 

전방은 北海(Bei Hai)로 통하고, 우측 방향은 什刹海(Shi Cha Hai)로 통한다. 

 

 

모두 입장가능한 시간이 있고 입장료가 있다.

 

 

고로 주변으로 상권이 갈라지는데 동쪽으로 대표적인 관광지 南锣鼓巷(Nan Luo Gu Xiang)이 있다.

 

 

고로(鼓楼)는 영어로 Drum Tower이다.

과거 통신수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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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京旅行记

 

북경어 이야기

 

'중국어'는 살펴볼 적에 기존의 교본에서 상투적으로 이야기되는 '한자'보다는 '입말'에 기초하는 것이

우리가 가져온 사대주의에서 한발짝 물러선 객관적일 태도를 가지리라 생각한다.

 

중국어는 '중국인이 쓰는 언어'를 말하지만, 내몽고인과 티벳인 등 소수민족도 중국인으로 간주 할 경우, 등식이 성립하겠는가?

따라서, 다수의 언어가 사용되는 사회이므로 국적과 언어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

장동계열의 광동/광서 방언이나 민/오방언도 분명히 한어방언으로

간주하기에 논란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마치 한자를 사용하여 표기하는

표음적 요소만을 빌어온 방법으로 이어져 온 것뿐이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된 후 국어(國語) 통일정책으로 북경 지방 어음을 표준으로 삼은 공통어를 제정하였다.

이를 보통화(普通話)라고 부른다(북경 어음과 보통화 어음이 실제로 일치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보통화는 음운상 중국 어느 지방에도 존재하지 않는 새롭게 구상된 인공언어라는 주장도 있다. 


1956년 한자 간화 방안(漢字簡化方案)이 시행되면서는 간략하게 표기되는 한자를 간체자(簡體字)를 강력하게 보급하였다.

각 지방에서 독특하게 자생하여 사용되어온 한자 체계가 사라지게 되었다.

현재도 중국에는 정자(正字), 약자(略字) 가 공존한다.


발음표기 체계는 대만의 주음 부호(注音符號, 1918)와 한어 병음 방안(漢語拼音方案, 1958)이 있다.

대만의 주음 부호 체계는 컴퓨터 키보드나 휴대폰에서 주로 사용된다.

중국에서 채택한 래틴자 기초의 한어 병음 방안 역시 컴퓨터 키보드나 휴대폰에서 주로 사용된다.

윈도우즈 XP나 비스타 등의 IME입력체계에서 사용된다.

중국인은 어릴 때부터 병음을 배우지만 우리는 중/고등 이후에 익히게 되므로

개인적으로는 그들이 다른 입력체계를 사용한다 하더라도

우리는 병음을 익힐 필요가 있으므로 초보자에게는 병음 입력(IME)방식이 낫다고 본다.

 

여행 이야기

 

구글지도로 보던 것과 축척의 문제로 알아보기가 어려워서 지도를 구입했다.

북경 광주는 상해와 달리 무료 관광지도가 없다. 우선 현지 정보를 얻기 위해 왕징에 내렸다. 버스6번을 타면 간다.

가격은 24원 정도. 고속지하철도 있다. 6번을 타고 종점에 내렸으나 그 부근은 지멘스 중국본사와 왕징병원이 있었고

주변에는 한국인이 보이지 않았다. 지도를 들고 이리 저리 짐을 갖고 다니다 보니 지치기 마련.

두시간 동안 헤메다 일단 호텔에 짐을 풀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왕징 지역이 워낙 크다보니 한블럭을 헤어나지 못하는 것이었다.

마침 지하철이 달리는 것을 보고 그쪽으로 걸어갔는데, 경밀로(精密路 Jing Mi Lu)였고

그 지하철은 공항-도심(경직문)을 잇는 고속지하철이었다.

부근에 798 예술구가 있다. 나는 4원교를 지나 3원교방향으로 갔고 거기서 버스를 탔다. 4-3은 모두 '원'이다.

4-5원내에 왕징이 있는 것이다. 3원교에서 동직문방향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점점 도심으로 가는가 싶더니,

완공이 되지 않은 건축물 내로 쑥 들어간다. 거기서 손님들을 떨궈내는 버스라니 약간 당황스러워 졌다. 거기서 지하철로 갈아탔다.

행사준비중이라 보안/치안 등으로 짐을 일일히 X선으로 검사하고 있었다. 거기서 2호선 구로우역까지 이동하였다.

 

 

유명한 호텔체인 아닌가? 100원짜리 방이 많을텐데...

위치만 적당하다면 다음에 이용해볼 것이다.

 

 

왕징이다. 왕징의 쇼핑센터지만, 그다지 가보고 싶진 않았다.

후에 저 곳에서 뭔가를 사긴 한거같은데...기억이 나질 않는다.

 

 

저 곳에서 좀더 들어가면 한국인집단 거주지가 있긴 할 것인데...

우측으로 소니에릭슨 중국본사가 보인다.

 

 

아직 정비가 되지 않은 곳이 자주 눈에 띈다.

산만한 이유중 하나는 지하철 공사때문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왕징 의원 / 종합병원 규모

 

 

지멘스 중국본사

 

 

외제차가 많이 보인다.

 

 

왕징은 마치 한국과 같다.

북경을 여행(travel)하기에 적합한 곳이 아니다.

 

 

이곳에서 삼원교 방향으로 가거나 다른 방향으로 틀어야 한다.

 

 

경밀로 방향으로 이동...

 

 

 

 

큰비...호텔이라...

 

 

도착한 곳은 사원교 동이다.

너무 덥기도 하고 짐이 무거워서 404번을 타고 동직문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잘 봐두시라...공항에서 오는 길은 바로 저 축선을 따라 온다.

1원 - 2원 - 3원 - 4원 - 5원...

대로 하나하나가 후통이라면 전체의 구조는 삼국지

제갈량이 써먹은 바 있는 팔진도(八陣圖)처럼 보인다.

 

 

저것은 공항직항 지하철이다.

 

 

택시들이 참 많다.

 

 

 

버스 종점

 

 

어딜 가나 경찰이 참 많았다.

 

 

뼈대만 있는 빌딩 속으로 들어가더니...여기서 떨궈내다니...

 

 

동직문 역 앞...

 

 

2호선 지하철에서 공항지하철로 갈아 탈 경우 이렇게 경유해야 한다.

 

 

2호선 동직문 지하철역이다. 시설이 많이 낙후되어 있다.

서울의 1호선보다 약간...지저분한 수준. 단, 객차는 청결한 편.

 

 

 

2호선은 북경의 유일한 순환선이다!

 

 

순환선이라는 점 잘 기억해두시길...

 

 

폭은 좀 좁은 편인걸까?

 

 

이렇다.

 

 

구로우따지에(鼓楼大街)역에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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