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京旅行记
북경어 이야기
동음이자(同音異字)와 동자이음(同字異音) 한자(漢字)
한자가 표의문자지만, 우선적으로 읽는 음도 고려하였으므로 일자일음이 원칙이지만
해당 지역의 음운상의 특징을 배려할 수는 없었다.
金 (금) 쇠 (김) 성
[jin] [gam]은 각각 북방/광운이나 중간지방에 [gim]에 가깝게 발음하기도 한다.
원래 [sh]는 후에 [ch]에 가깝게 발음되었는데, 몽/만족이 지배하면서
부터일 것으로 생각된다.
內 (내) 안 (나) 여관
[nei] [na]는 북방어음이지만 [들일 납 nap]은 광운으로 생각된다.
北 (북) 북녘 (배) 달아날
[bei]은 북방어음이고 [book]은 광운[bok/bak]에서 기원한다.
실제로 산서나 사천지방은 압운이 탈락된 [bo]에 가깝게 발음한다.
食 (식) 먹다 (사) 밥
[shi] [si] / [sik] 는 각각 북방/광운으로 보인다.
[sek]은 백화음으로써 훈음이다. 민음은 [jia]이다.
[yi]는 사람이름에만 쓰인다(일어에도 종종 보인다).
車 (차) 수레 (거) 수레
[che] [ju]는 북방어음이다. 당음은 [chia] [gu]에 가깝다.
광음은 [tea]로 茶의 음운과 동일하다.
行 (행) 다닐 (항) 항렬
보통화는 [xing]으로 주로 쓰이나 특별한 경우 당음[hang]도 사용한다(銀行).
광운 역시 [hang]이다. *민음은 [gia]
活 (활) 살 (괄) 물소리
보통어음 [huo/kuo]으로 h/k음은 매우 밀접한 음운대응을 이룬다.
洞 (동) 마을 (통) 통할
[dong][tong]은 아주 밀접한 음운대응을 이룬다.
合 (합) 합할 (홉) 흡
[hap]은 광운이다. *복주음은 별도로 조사
反 (반) 돌이킬 (번) 뒤칠
惡 (악) 악할 (오) 미워할
보통화 [e]가 관중지방에는 옛이응의 비음이 섞이면서 [nga]에 가까워진다.
광운이 [ok] 이나 [ngak]발음이 있었을 법하다.
'오'는 북방어음에서 유입된 것이다.
見 (견) 볼 (현) 드러날
북방어음 [jian], 광음 [gin]에서 크게 음운대응상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xian]은 원래 복주음 [hien]에서 나온 음이다.
殺 (살) 죽일 (쇄) 감할
북방어음 [sha] [shai]는 각각 당음에 기원한다.
識 (식) 알 (지) 기록할
[sik]은 광음/민음/당음 동일하다.
氏 (씨) 성 (지) 나라이름
북방어음 [shi]은 대체로 [xi]는 광음이다.
降 (강) 내릴 (항) 항복할
각각 병음 [jiang] [xiang]에 대응하지만
청음/복주음(명음)에 해당한다.
度 (도) 법도 (탁) 헤아릴
병음으로 [du] [duo]이나 복모음(ex. uo)보다 단모음(ex. u)이
탁음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便 (편) 편안할 (변) 오줌
병음으로 [pian] [bian]과 일치한다.
宿 (숙) 잘 (수) 별
병음 [su][xiu]는 각각 광음/북방어음에 대응한다.
[sook]은 광음이고 [soo]는 북방어음이다.
射 (사) 쏠 (야) 벼슬이름
병음은 [she] [ye]이다. 광음은 [je]이다.
說 (설) 말씀 (세) 달랠
[shuo]의 광음은 [suit]이고 북방어음중 방언음으로 [shui]으로도 발음된다.
[shui]이 한국의 신라음으로 들어와 [세]가 된 것 같다.
參 (참) 참여할 (삼) 석
광음 [cham]과 북방어음 [can]은 음운대응상 동일하다.
宅/宅 (택) 집 (댁) 댁
병음으로 [zhai]지만 문어음으로는 [zhe]이다.
아마도 단모음인 [zhe]가 택/댁에 가까울 것이다.
광음은 [chak]이고 복주음은 [ch]가 [t]에 병합되는 것을
고려할 때 [taek]에 가까워질 것이다.
復 (복) 회복할 (부) 다시
북방어음 [fu]의 경우, 중국지방방언의 음운특징상 [b] [f] [p]
혼용되는 경우가 매우 잦다. 한국음 [bok]은 민음에 기인한다.
則 (칙) 법 (즉) 곧
강한 발음은 [h]을 첨가하여 [jhat]으로 표시한다.
음차/가차
*삼국사기는 683년 식해를 폐백용품으로 준비했다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당시 동해안의 향토음식이었던 식해가 일본에 전해지게 되었다(일본의 사학자들은 반도의
도래인이 전해준 것으로 본다). <식의 문화> 의 저자 이시게나오미츠(石毛直道)는 718년 나레즈시(なれずし)에 관한 최초 기록이 있고 그 기원은
동해연안의 향토요리에서 전래되었다고 밝혔다.
*당연히 壽司는 음차이다.
북경 이야기
마오의 대장정
대장정(長征, Long March)은 국민당에 패퇴한 홍군이 18개의 산맥과 24개의 강을
건너 이동하면서 오히려 세력을 넓히게 된 사건이다.
패퇴한 것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된 것이다.
1930~1934년 당시 마오의 홍군은 강서소비에트를 5차례에 걸쳐 내전하였는데,
5차작전시 마오의 홍군이 궤멸직전에 있었고 1934년 10월 15일
10만명의 전투원 등 병력이 극적으로 살아남아 이동하였다.
*1935년 10월 마오의 부대가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불과 8,000명 정도만 생존해 있었다.
장정 도중 농민들을 조직하기 위해 각 지방에 남겨진 사람들도 일부 있었지만, 대부분은 전투·질병·굶주림 등으로 죽어갔다. 사망자들 중에는 마오쩌둥의 어린 두 아이와 그의 동생 마오쩌탄[毛澤覃]도 포함되어 있었다.
*강서소비에트는 중화소비에트공화국(中華蘇維埃共和國, 中华苏维埃共和国)를 말하는 것으로 1931~1934년 모택동과 주덕에 의해 세워졌다. 1921년 당시 지식인과 노동자를 기반으로 중국공산당이 만들어졌는데, 국민당과 제휴하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제1차 국공합작이다.
공산당원들은 개인자격으로 국민당에 입당하였다.
*중화소비에트공화국(中華蘇維埃共和國)는 꽤 나름대로 진보적인 헌법체계를 갖춘 국가(?)라 할 수 있다. 물론 마오에 의해 부정되었다(헌법파기).
어떤 중국인은 이렇게 말한다.
"왜 소수민족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모두 나가버렸으면 좋겠다. 소수민족 때문에 중국을 보는 시선이
안좋다. 사라졌으면 좋겠다."
아직은 어려서 그렇게 말한걸까? 그 심정이 그만의 것일까?
모주석기념관(毛主席紀念堂) 입장료 무료(카메라/가방은 맡겨야 함)
방부처리 되어 보존된 모택동의 사체를 관람할 수 있게 되다고 한다.
개방시간 : 오전 8시 30분 - 11시 30분
화요일, 목요일 : 오후 1시 30분 - 4시
성수기 7월·8월 오전 입관(월요일 휴관)
지정된 시간에는 개방되어 있어야 겠지만, 불규칙하다.
여행시는 늘 개방시간을 체크하여야 낭패를 줄일 수 있다.
이른 바...만일 사람이라면 중국의 침묵하는 증인중 하나 일 것이다.
저렇게 어렵게 민중(농민)이 중심인 국가를 세워놓고(실제는 공산당 일당 독재)
대놓고 민중/인민을 학살했으니 마오나 덩이나 업적을 앞세워
과오(過誤)를 덮자는 것은 마치 우리를 보는 듯 하다.
인민대회당(人民大会堂)
참고 : http://ko.wikipedia.org/wiki/%EC%9D%B8%EB%AF%BC%EB%8C%80%ED%9A%8C%EB%8B%B9
건국60주년 행사준비로 분주했다.
1949년 10월 중화인민공화국의 건국을 선언하였다.
중화민국의 경우 1949년 12월 국민당정부가 정부를
대만으로 이전한 이후 남/북한과 마찬가지로 본격적인 체제경쟁이 시작되었다.
(번/간체 문제와 남/북한간의 한자 혼용문제가 닮아 있다)
거대한 스크린을 만리장성처럼 늘어뜨려
급격하게 서구화된 모양새를 중국의 중요한 아이콘으로 삼으려 한다.
내가 도착한 날과는 달리 통제가 많이 완화되어 있었다.
국기하강식
촬영하기 위하여 군중이 몰려들었다. 정말 적지 않은 인원이었다.
폼새만 보자면 대만 손문기념관의 그것이 더 멋져보인다.
또 하나의 증인이 있다.
고궁앞의 천안문과 마오이다.
그는 안다. 얼마나 잔인하고 추악했는지...
실은 천안문 사건이 있었는지조차도 잊혀져 가고 있다.
아직까지도 후야오방과 자오즈양에 관해
공공연하게 이야기되는 것을 꺼리는 북경인들...
모양새로만 보면, 중국의 국부 아니 한족의 국부 손문보다
모택동은 한족의 아버지로 여겨진다. 손문(孫文)이 국민당의 창시자라는 이유로
그는 대만의 국부(國父)이지 중국에서는 '혁명선행자'(革命先行者)로서 존경받는다.
중국인의 정신세계와 문화유산을 갈기갈기 훼손하였다.
중앙의 중앙을 차지하고 있다니 씁쓸하였다.
이곳 주변을 지키는 경비(?)에 해당하는 군인은
대체로 몸매가 호리호리하였다.
중산공원입구 / 이곳을 통해 고궁으로 진입한다.
짐을 꾸려 북경서역으로 이동!
정말 어마어마한 규모이다. 호텔이 얹혀있으니 당연하겠지만 말이다.
서역광장에는 라싸/성도/중경/서안/태원/장가계/개봉/낙양 등지로
상업에 종사하는 이들로 꽉 차있다.
신종플루로 인해 짐을 검색한다.
대기중
좌우편에 열차 개찰구가 있다.
라싸행 21:30 차 탑승
탑승완료
YZ350928 / 객실 시설은 만족할 만한 수준
티벳글자가 적혀있다.
중국 서장에 관한 잡지가 놓여있다.
'국외여행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090915 西安旅行记-13 (0) | 2010.03.09 |
---|---|
20090915 西安旅行记-12 (0) | 2010.03.09 |
20090914 北京旅行记-10 (0) | 2010.03.09 |
20090914 北京旅行记-09 (0) | 2010.03.09 |
20090913 北京旅行记-08 (0) | 2010.03.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