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지로6가 중앙아시아 촌::)
합법이건 불법이건 외국인 노동자들이 늘면서 수도권 일대에 자 연발생적으로 ‘외국인촌’이 하나둘씩 들어서고 있다. 돈을 벌 기 위해 멀고 먼 이국 땅을 밟은 외국인 노동자들. 한국인들의 곱지않은 시선과 차별을 견뎌가며 이들은 자국의 향수를 달래는 공간을 스스로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공간에는 국적만큼 이나 다양한 이국적인 문화가 숨을 쉰다. 외국인촌은 대부분 공장지대 인근인 구로공단 주변이나 안산 시 화공단 주변에 주로 포진해있다. 외국인 노동자들의 숙소와 생활 반경이 대부분 공장지대 인근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짧은 탈출의 목적지인 을지로6가의 중앙아시아촌은 좀 색다르다. 공장지대도 없고, 평소에 외국인들의 왕래도 그리 많지 않은 편 이다. 그렇다면 왜 이곳에 중앙아시아촌이 만들어졌을까. 러시아 와 인근국가들의 보따리상들이 동대문일대의 의류시장을 찾으면 서 이곳에 중앙아시아촌이 자연스럽게 형성됐다는 것이 정설이다 . 중앙아시아는 그야말로 우리에게는 생소한 땅이다. 중동지방과 극동아시아 중간쯤에 위치하고 있는 불분명한 지리적 경계선을 가지고 있는 지역. 중앙아시아의 대표적인 나라가 바로 카자흐스 탄과 우즈베키스탄, 그리고 키르기스스탄과 투르크메니스탄이다. 이번 탈출의 교통수단은 지하철이면 족하다. 서울지하철 동대문 운동장역에서 내려 12번 출입구로 나오면 여기서부터 중앙아시아 촌을 만날 수 있다. 어느쪽이든 골목으로 들어서면 온통 읽을 수 없는 러시아어 키릴 문자들로 가득하다. 하다못해 길거리 후미진 곳에 쓰인 ‘소변금 지’란 경고문구마저도 키릴문자와 나란히 병기돼있다. 대로변의 치킨집에도 진열장에도 일어부터 중국어, 영어, 키릴문자 등으 로 다국적 메뉴를 써놓고 있다. 구경꾼의 입장에서 가장 호기심이 발동하는 것이 바로 음식. 이 곳 일대에는 중앙아시아 음식을 내놓는 음식점이 10곳이 넘는다. 광희빌딩 뒤편의 삼송길로 들어서면 ‘크라이 노드노이’란 음 식점이 있다. 러시아와 카자흐스탄 음식을 내놓는 곳인데 중고차 무역상을 하는 남편을 따라 입국한 고려인 김라리사(49)가 음식 을 만들어 내온다. ‘크라이 노드노이’란 카자흐스탄 말로 ‘고향 집’을 뜻한다. “손님이요? 공장에서 막일 하는 사람들이지요. 전에는 옷장사를 하는 바이어들도 있었는데, 지금은 막노동을 하는 사람이 대부 분이지요. 일주일 내내 공장에서 일하다가 주말이나 휴일이면 고 향사람들이 모이는 이 곳으로 나오지요.” 이곳에서 가장 인기있는 음식은 양고기꼬치요리인 샤쉴릭(5000원 )과 찐만두와 비슷한 만트이(4000원), 그리고 러시아식 빵인 흘 례프(2000원) 등이다. 양고기 특유의 냄새가 살짝 배어있어 입맛 에 잘 맞지는 않지만, 그런대로 독특한 맛을 즐길 수 있다. 광희빌딩쪽에서 바다장어촌과 두레마을 사이로 난 뒷골목으로 들 어서면 이곳에는 카페 ‘사마리칸트’가 있다. 이곳도 역시 카자 흐스탄 요리가 전문이다. 털이 부숭부숭난 카자흐스탄 주방장 샤 흐리올(33)이 화덕앞에서 연방 만두를 빚어내고 있다. 서툰 한국 말로 겨우 의사소통을 하는 정도인데, 한국인 손님에 대한 환대 가 남다르다.
이곳에서 30m쯤 더 들어가면 1층에는‘우즈베키스탄’이란 카페 가 있고, 2층에는 잡화점겸 비디오가게 ‘사마르칸트’가 있다. 잡화점에는 러시아보드카부터 담배와 각종 과자류, 생필품들이 빼곡하게 가게를 채우고 있다. 한쪽에는 진열장 가득 우즈베키스 탄에서 가져온 대여용 비디오들이 장르별로 일목요연하게 꽂혀있다. “사람들이 없어요. 요즘 단속이 심하잖아요. 돈을 많이 못벌었 어요. 한국사람들도 자주 오죠. 주로 보드카를 사러와요.” 유창하게 한국말을 구사하는 쇼루시(25)는 우즈베키스탄의 대학 에서 한국어를 전공한 학생. 지금은 국내대학에서 교환학생으로 공부하는 중이라고 했다. 사진을 찍겠다고 했더니 한국에 입국한 지 이제 일주일이 됐다는 조카 샤크니오스(9)가 냉큼 달려와 삼 촌 옆에 섰다. 광희빌딩에서 을지로로 이어지는 벌우물길 한가운데는 10층짜리 뉴금호빌딩이 서있다. 빌딩입구의 입주회사 안내표지에는 온통 읽을 수 없는 키릴 문자들로 빼곡하다. 마침 이곳을 지나던 고려 인이 ‘대부분 운송회사’라고 했다. 또 무비자로 입국한 중앙아 시아인들의 취업을 알선해주는 업체들도 상당수라고 설명했다. 금호빌딩 맞은편 쪽 골목으로 들어서 왼쪽으로 꺾어지면 몽골음 식점 ‘징기스칸’이 있다. 몽골 음식을 전문적으로 내놓는 집인 데, 주인은 한국사람이다. 식당에 들어서면 종업원들이 몽골어로 말을 붙여온다. 한국인들의 발길이 드문데다 몽골인과 외모상 구별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쵸이왕(4000원)을 맛보자. 칼국수와 같은 국수를 양 고기와 함께 볶아서 내오는 것인데 처음에는 다소 퍽퍽하고 역한 듯하지만, 먹을수록 독특한 풍미가 느껴진다. 대부분의 몽골인 들은 쵸이왕과 만두의 일종인 ‘만토’(500원), 그리고 끓는 물 에 우유가루와 짭짤한 맛을 내는 약초를 섞어 넣어 만든 ‘수태 차’를 주문했다. 본격 칭기즈칸 요리는 100g에 6000원이고, 500g에 3만원을 받는다. 낯선 땅 중앙아시아에서 돈벌이를 위해 찾아든 파란 눈의 노동자 들이 향수를 달래는 곳. 불법취업 외국인 노동자 문제처럼 골치 아픈 주제는 잠시 접어두고 이곳 중앙아시아촌의 식당에서 옆테 이블의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가벼운 농담을 건네면서 한끼 식사 를 해보자. 그것이야말로 외국인 노동자들이 우리와 똑같이 존중받아야 할 사람들이라는 것을 깨닫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 한편으로는 틀 에 박힌 도회지에서의 일상을 환기시키는 새로운 경험을 즐기는 법이기도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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