臺灣旅行記
"데일 수 있습니다! 조심하세요!"
M 台語(閩南話)
G 國語
M : 真燒喔!愛細膩!
zīn sior o!ài sè rī!
진시오! 아이세리
G : 很燙喔!要小心!
hěn tàng wō! yào xiǎo xīn!
헌탕어! 야오샤오신!
새로운 민어어휘
燒[sio] 태우다 / 뜨겁다 cf. P 燙 데이다
細膩 [sè rī] 조심하다 cf. P 細膩 [xì nì]부드럽다 매끄럽다
*보통화의미와 무관하게 활용
대만이야기
시먼띵 후면
우리라면 내버려 두었을까?
시먼띵 주변의 주점
과거 타이뻬이
“대만은 원래 남도어계(南島語系, Austronesian languages)에 속하는 폴리네시안 원주민이 살고 있던 포르모사로 불리는 섬이다. 포르투갈 선원이 타이완을 발견하고 "아름다운 섬"이란 뜻으로 붙인 이름으로, 아직도 구미권에서 일부 쓰인다. 중국역사 범주내에서 중국적 아이덴티티를 가지는 곳은 아니었지만 15세기 말엽 명(明)나라가 쇠하면서 복건성(福建省) 주민(福建人Hokkian)이 이주하면서 중국역사 내로 편입되었다. ”
"1661년 복건성 출신 명나라 장군 정성공(鄭成功)이 망명해오면서 네덜란드인을 추방하고
대만을 지배하였으나 곧 청에 의해 정벌되고(1684년) 이 때부터 한족의 토착화가 시작되었다."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시모노세키 조약(1895년)의 내용에 의해 요동반도와 대만과 함께 열도를 전리품으로 중국으로부터 할양받아 오키나와현에 편입시키게 된다. "
"일본인 지배하에 시먼띵 주변에는 일본인들이 집중거주하였고
그 일대도 개발되었다. 그것이 현재의 시먼띵 상권이다."
일거시대 당시 관공서에서 사용했던 인장
2층 강연장 입구
훌륭하다!
1층은 까페테리아로 활용되고 파티 연회장으로도 쓰인다.
이런시설이...우리에게도 남아있는지...
시먼띵 좌측 용산사로 가는 길
이리 저리 치이는 스쿠터(Scooter)
현지어로는 踏板车 [tà bǎn chē]
외래어는 摩托车 [mo tuo chē]
대만을 이해하자.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투항하자 대만을 접수한 것은 국공(國共)분열시기의 국민당이다.
대만성 행정장관으로 부임한 첸이(陳儀)는 대만인들을 왜놈황민화(皇民化) 교육을 받은 노예라 하여 동등한 중국인으로 대우하지 않고 오히려 멸시하였다. 한편 그 나름의 질서가 있어왔던 일본의 문민통치를 경험한 주민(원주민/선주민)의 입장에서 보면 국민당원은 일본식민통치자들보다 훨씬 더 비인간적이고 악랄했으며 입법/사법/행정의 모든 권한을 독점한 점령군에 불과했다. 대륙출신의 국민당 외성인(外省人)과 대만 본성인(本省人)간의 충돌은 불가피.
이런 시기에 외제담배를 팔던 노파를 세무경찰이 총 개머리로 으깨버린 참사가 벌어졌다.
이것이 바로 타이뻬이시에서 1947년 2월 28일 벌어진 '얼얼바 2.28사건'!
이 사건으로 대만인 2만 8천 명이 살해됐고 온 하천이 피로 물들었다.
1949년 5월 19일 계엄령이 내려지고 고웅 미려도사건 이후
민주화에 대한 끝없는 열망아래 1987년 7월 15일 계엄령 해제에 이르기까지
38년간 85%에 달하는 대만 본성인들은 백색테러의 공포 속에 떨어야 했다."
'국외여행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臺灣旅行記 20080803-11 (0) | 2010.03.09 |
---|---|
臺灣旅行記 20080803-10 (0) | 2010.03.09 |
臺灣旅行記 20080803-8 (0) | 2010.03.09 |
臺灣旅行記 20080803-7 (0) | 2010.03.09 |
臺灣旅行記 20080803-6 (0) | 2010.03.09 |